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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 정아은 저책 이야기 2021. 3. 4. 06:00728x90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는 전업주부에 대한 정당성을 풀어내는 책이려니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읽다가 별로면 바로 접어버릴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이미 전업주부로 살면서 치열하게 고민을 했던 시기도 지나고 이제는 전업주부도 아니고 워킹맘은 더더욱 아닌
그저 내가 바래왔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정당성은 더는 필요하지 않아서 였는데요.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삶이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이혼을 하고 나서야 가능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닳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혼 전과 이혼 후의 삶을 살펴보면 가장 큰 차이라고는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을 했고 이제는 내가 주는
돈으로 생활을 한다는 것 뿐인데. 이게 이렇게 큰 삶의 질이나 마음의 평안의 차이를 만들어 낼 줄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별로면 바로 접어버릴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한장 한장 표시를 해가며
정신없이 읽어내려갔는데요. 아니 더 열심히 산을 걸었네요.
보통 아침 산책을 하면서 귀에 이어폰을 꼽고 오디오북으로 책을 들으며 산책을 하는데요. 집중이 더 잘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롯이 책과 숲을 즐기며 몸에도 좋은 운동까지 겹하고 있으니 일석 삼조의 시간입니다.
한번 타인의 입에서 발화되어 내 청력의 작동 범위로 들어온 말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언어가 본시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한
이름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 말' 자체를 좇는 것만으로는 그 말의 영향력을 소거할 수 없다. 말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말'의 기원을
찾아가는 길은 그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주부들에게 '집에서 논다' 는 말을 하는 이를꾸짖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교정하려 드는 단계를 넘어 발화자가 그 말을 하게 만든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꼬리에 불과한 말 한마디보다는 그 말을 양산한 몸통을 더듬어 찾아내야 하므로, 집에서 논다는 말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에 '엄마' 라 불리는 이들이 눈을 빛내며 동참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으리라.
전업주부로 십수년을 살면서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말도 '집에서 논다'였다. 해외 유학까지 갔다와서 그 똑똑한 머리로 왜 집에서
먹고 놀고 있냐는 말은 짧게 설명하기 쉽지 않아서 그냥 아이의 핑게를 대며 살았던 세월들이었네요.
하지만 내가 전업주부로 살겠다고 결정을 했던데에는 나름 이런 저런 많은 책들과 육아서에 아동 심리학까지 들어가며 공부를 하고리서치를 하고 워킹맘이었던 엄마의 삶을 돌아보며 전업주부로 워킹맘보다 더욱 가계에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아이를 외롭지 않게잘 키워낼것 같은 자신과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결혼을 하고 사회적 시선 혹은 시댁의 공짜 노동력으로 생각하시는 태도는전업주부로 살겠다고 결심했을때 막역하게는 알고 있었지만 그걸 경험하며 내가 어떤 감정이 될지는 몰랐던 일이었는데요.그래서 내렸던 결정이 이민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전업주부 혹은 내가 키우고 싶은 아이로 내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아이를 가지기도 전에 신청을 했던 이민. 어쩌면 저의 전업주부 시절은 왜 내가 전업주부를 할 수 밖에 없는지 끊임없는 핑계를 찾아내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내며 가정 경제를 위해 주택구매를결정하고 주택을 유지하고 시민권을 유지하고 등의 나의 가정경제에 이바지 하는 일들을 그냥 그대로 인정받으며 살 수는 없었는지.왜 남들에게 끊임없이 나의 전업주부의 정당성을 설명하려고 혹은 그냥 무시당하는 것을 당연한듯이 받아들이며 살았는지 이제와서돌아보니 아쉬워서 더욱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읽으면서 표시를 너무 많이 해 두어서 다 옮겨적지는 못하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주부들의 세상은 왜 이렇게 다른가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 계급론)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 레슬리 베네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요리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라문숙,(전업주부입니다만)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나는 왜 회사를 그리워하는가 - 게오르크 지멜, (돈의 철학)나는 왜 뉴스에 나오지 않는가 -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아이 셋을 길러낸 전업주부는 왜 연금을 받지 못하는가 - 낸시 폴브레,(보이지 않는 가슴)누가, 왜, 여성들을 불태웠는가 - 실비아 페더리치, (캘리번과 마녀)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 가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공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박가분, (포비아 페미니즘)내 몸 안에 갇힌 나를 어떻게 들여다 볼것인가 - 로이 바우마이스터, (소모되는 남자)왜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비구니가 (아빠수업)이라는 책을 낸다면 어떤 반응을 받을까 - 법륜,(엄마 수업)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여대할 수 있을까- 김하나,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주부들은 왜 제 가족의 안위만 생각할까-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글을 닫으며 -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해묵은 거짓말
이 책은 이렇게 목차만 보아도 작가가 이 책들을 읽고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자신의 생각을 이어가는 책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는데요. 가끔은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목차를 읽으며 더욱 내용이 궁금해지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저 중에 몇권은 읽은 책이라는 뿌듯함에 다른 몇권은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한가지 목적을 향해가는 책 리뷰모음집 같았다고 할까. 아마 어쩌면 한편의 논문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게도
하는 책이었는데요. 논문보다는 훨씬 읽기 쉽고 술술 읽히는 그러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모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습니다. 아마 작가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욱 그랬던 듯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는데요. 많은 여성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랑은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났다. 어떤 행동은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어떤 행동은 배려를 위해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절대 만나선 안 되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똑같은 현상이 대칭처럼 반대편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현재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아이 없이 돈을 벌었던 비혼 남성은 은퇴 후 죽을 때까지 두둑한 연금을 받게 된다. 그때 그가 받는 연금은 전업주부가 길러낸 아이들이일해서 번 소득에서 떼어내 이전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을 낳고 먹이고 입히고 교육해 사회의 일꾼으로 길러낸 전업주부는비혼 남성과 같은 연령이 되었을 때 아무런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다. 남편에게 돌아가는 연금을 같이 쓰지만, 자신이 그 연금의 공식적인수령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에게 연금을 나누어 쓰겠다는 의지가 없거나 이혼하거나 사별할 경우 온전히 그 연금을 수령할 수 없다.타인의 선의나 법적 범위 안에 들기를 희망하며 일부 금액만을 수령하거나, 전혀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경제학이 돈으로 환산 되지 않는 비시장 노동을 가치있는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로 살았던 것을 후회했던 순간은 이혼을 한 후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내 몫이라고 생각했던 재산분할을
하는데 제대로 다 해주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이 힘들게 번돈을 뺏어가는 나쁜여자 취급했던 전남편을 보면서, 전남편은 결혼 생활중에 계속 했던 경제활동으로 사회적 지위나 월급이 이혼을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지만 십수년을 전업주부로만 살았던 저는 경단녀에 최저임금에 육체노동의 일자리 밖에 찾을 수가 없는 현실을 보며 전업주부로 살다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여자에게 부당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경험을 했었네요.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이 자본가가 노동자를 통해 부를 쌓았다는 개념이라면 페데리치의 시초 축적은 남성이 여성을 착취해 권리를
쌓았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같은 남성의 시초 축적을 통해 자본가와 국가는 하류층 남성 노동자들이 현실에 품은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있었다. 여성이라는 식민지를 다스릴 수 있게 해 줌으로써, 그런데 이 식민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가정이라는 영토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는데, 그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사일, 삯바느질, 마을 환자치료 등 공동체 차원에서 일하며 능력을 발휘했던 여성들이 갑자기 집 안에 틀어박혀 가족들의 뒤치다꺼리에만 전념하라는 메세지를 받으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여성들은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던 초창기, 인클러저가 막 발아하던 시점부터 저항했다.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는 행위에 맞서 집단 시위를 벌였고, 누구든 들어가 열매를 주울 수 있던 숲이 사유지로 변하고 입장이 금지됐을 때 목숨을 걸고들어가 먹거리를 채집했다. 아이들을 먹이고 길러야 하는 여성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생계 수단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모든 만물에 소유자를 지정하고, 모든 물건에 가격을 매겨 숨 쉬고 먹고 자기만 해도 누군가 이익을 보는 체계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이들, 즉 자본가들에게는 그런 여성들보다 더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없었으리라, 그들에게는 소리치고, 선동하고, 자기 권리를 잃지 않으려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을 다스려 잠재울 한 방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탄압할 수는 없었을 터, 적절한 명분을 둘러쓴 그럴싸한 방안이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마녀사냥이었다. 신의 이름을 팔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 분위기를 등에 업고 멀쩡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죽음으로 끌고 갔던 것이다. 이는 당대 마녀사냥에 희생당했던 이들이 대부분 아이를 받아주던 산파, 약초로 이웃을 치료해주던 아낙, 지주의 횡포에 저항하는 시위 조직에 능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보아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집에 머물면서 한 명의 남성 노동자의 식욕. 성욕.안정 욕구를 충족해주는 순종적인 여성 이외의 모든 여성은 언제든 마녀로 몰릴 수 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한국 사회가 왜 그토록 이혼녀들에 대해 마녀사냥과 비슷한 사회적 이미지를 만들고 취급하고 있는 지가 이해가 되는 듯
했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순으로 가득찬 결혼생활을 박차고 나아가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이혼녀들이 그들은 불편한것이다. 다른 여성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희생만 강요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깨닳게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읽으면서 기분좋게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어서 기분좋게 읽었던 책이었는데요.여자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면 더욱 꼭 읽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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