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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2017. 1. 19.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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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종종 무슨 무용담처럼 엄마가 일을 하시며 저를 키우신 이야기를 해 주셨었습니다.


    아주 아기였을때 시골에서 먼 친척 아이를 아기를 봐주라고 데려다 놓았는데 그 아이가 정신적 문제가 살짝 있는 아이인것을 주변에서 속여서 모르고 데려오셔서 아기를 맡기셨는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셔서(제 부모님은 부부교사셨습니다)  평소처럼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데 아기가 젖을 물지를 않고 자지러지게 울기만 해서 왜 그런가 했는데 어느날 청소하시다 그 친척 아이의 일기를 보시게 되셨는데

    ' 아기가 자꾸 울어서 귀찮아서 베게로 덮어 버렸다 그리고 한참을 눌렀다.  아기 보는게 귀찮은데 그것도 모르고

    나한테 잘해주는 언니가(저희 엄마)가 불쌍하다. '   라는 글을 읽으시고 깜짝 놀라셨었다는...

    그때 젖을 물리는데 안 물던 날이 제가 베이비시터한테 학대를 당한 날이었었던 걸 뒤늦게 아시고는 그 아이를 쫒아내셨다고.


    엄마의 육아를 맡아서 도와주실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이 없으셨던 육아기는 저의 상상을 능가하는 것들이었고

    엄마는 늘 너는 죽다가 살아난 아이고 아기때 너무 고생을 많이 했으니 살면서 큰 고생은 없을꺼야.. 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었습니다.


    제가 세살때 옆집에 맡겨두셨을 때인데 제가 낮잠을 자는 동안 그집 아주머니가 혼자 시장을 보러가셨고 그 사이에 잠에서 깨었던 제가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어서 혼자 울면서 집 근처에 있던 엄마 학교를 찾아와서 미술선생님이 저를 교무실 엄마책상 밑에서 엄마를 기다리게 하셨고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제가 엄마 책상밑에서 놀고있더라는 이야기등


    물론 어릴적 기억이 나지 않는 저는 그런 기억들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러면서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기억 하나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려나...

    감기에 고열로 학교를 쉬면서 낮잠을 자다가 깨어서 마주한 그 아무도 없는 집의 적막감...

    고열로 입은 바짝 마르고 겨울의  짧은 일조량은 벌써 방안을 어둑어둑하게 만들고 있는데..

    누가 시원한 물이라도 입가에 적셔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시원한 손이라도 머리에 얹어주며 괜챦니? 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었던 그날의 그 사무치던 외로움..  그 적막감...


    어릴적부터 제 꿈은 현모양처였고 저는 아이를 키우면 절대로 일을 하지 않아야지 하고 결심을 했었습니다.

    내 아이만큼은 그런 사무치는 외로움의 기억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


    그렇게 업계 세계최고의 외국인회사에서 해외출장다니며 고속승진을 하던 저는 임신을 하자마자 바로 사표를 내고 아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말렸지만 내 아이는 내손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이유는 아마도 어릴적 저의 저런 기억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기억들...   


    그리고 크면서 보았던 엄마와 아빠가 같은 직업이신데도 퇴근후 삶이 다른 것을 보면서...

    엄마는 학교에서도 일하고 오셔서 또 집에서도 모든 집안일에 육아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 아빠의 지방 전근으로 가끔 아빠 혼자서 우리를 키우기도 하셨고 엄마 혼자서 우리를 주말부부로 키우기도 하셨는데

    아빠혼자서 우리를 키우신 일은 아빠의 뿌듯한 자랑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시곤 하셨었던 반면.

    엄마는 항상 내가 남의집 아이들 키우느라 너네를 잘 못키워서 미안해... 인것을 보면서 난 내 아이에게 절대로 미안해라는

    말을 하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가 저도 모르게 제 머리에 박혀있었었나 봅니다.

    그리고 워킹맘은 직업이 두개나 된다는 것이 그리고 그 두 직업 모두를 퍼펙트 하게 하지는 못해서 늘 힘들어 한다는 것을

    보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할까...  내가 적은 돈으로 살림을 사는 삶을 살면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훨씬 나은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러가지 분명한 이유로 전업맘을 선택을 했지만 살면서 그 결심이 흔들렸던 순간은 참 많았습니다.

    특히 일하는 동서는 전혀 돕지 않는 시댁일을 전업맘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내가 도맡아서 할것을 기대하면서 내가 해 주는

    일에 대해서는 집에서 노는 사람이 해야지.. 라는 평가를 받을때...

    동서가 내놓은 적은 돈에는 고마워하면서 나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고맙다는 말은 별로 못들을때...

    혹은 남편이 자기가 벌어온 돈이라며 나를 자기 돈으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취급을 할때...

    워킹맘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하는거고 전업맘은 취직을 할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마주할때...  등등...


    특히 낮아지던 자존감...

    아마 캐나다로의 이민이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계속  전업맘으로 살았다면 이정도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기는 정말 어려웠을 듯요...


    얼마전에 육아휴직에서 돌아온지 얼마안된 세아이의 엄마가 과로사했다는 뉴스를 보며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이젠 엄마를 못보게 된 그 아이들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결정이 쉽지도 않고 결정 후의 삶은 더 쉽지가 않은 한국사회의 현실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해야만 하는 사회의 현실이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루빨리 대한민국이 모든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데 복권당첨되는 것처럼 여기저기 서커스를 벌이는 것 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버텨내야 하는 사회가 아닌 부모와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삶을 사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더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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