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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쳤나봅니다.
    캐나다 (Canada)/산행(Hiking) 2019. 7.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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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발목을 보호하는 목이 긴 등산화를 신고 있었음에도 바위들 틈에 끼어 접혀 버린 발목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졌던 일.

    사고는 순간이었던 것에 비해 여파는 길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압박 붕대를 감고 생활을 해야 하고 더 조심히 최소한 움직임을 줄여야 합니다.

    가끔 이렇게 음산한 조명의 침을 맞으러도 가야 합니다.

    밴쿠버에서 침을 맞는다는 것을 정말 비싸서 평소 같으면 그냥 참고 낫기를 기다릴 텐데 마음이 조급하기는 한가 봅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딘 속도로 낫고 있는 발목.

    주위에 친구들은 이번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포기하라고 야단들입니다.

    아픈 제 발목의 상태도 문제이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도 짐이 될 것이니 더욱 그런가 봅니다.

    저 또한 짐이 될 수는 없기에 저의 몫을 하고자 더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하고 아픔을 참아내야 할 테니 결정을 내리기까지

    신경이 예민해져 있습니다.

    하루하루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기대했던 것만큼 발목은 나아지지를 않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일은 다가오고...

    하루에도 열두 번을 포기한다고 했다가 너무 아쉬워서 못한다고 했다가 마음과 머리가 서로 다른 말을 외쳐대서 결정이

    널을 뛰고 있습니다.

    맥주 한 병을 다 비우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해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냥 걸어보고 결정을 하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일기예보처럼 비가 오는 번젠호수.

    발목에 붕대를 감고 똑같은 무게의 배낭을 메고 혼자 아침부터 걸어보았습니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번젠.  잔뜩 내려앉은 구름이 운치를 더해줍니다.

    이게 뭐라고....

    아픈 발목에 붕대를 감고 15킬로의 무거운 백팩을 메고 한걸음 한걸음 숲을 걷는데 그냥 너무 좋습니다.

    마냥 행복합니다.

    미쳤나 봅니다.

    그렇게 가슴이 부르짖는 결정을 내립니다.   웨스트코스트 트레일 트레킹 강행.

    평소보다 한 바퀴를 도는 시간이 더 걸렸고 평소보다 중간중간 쉬기도 많이 하고 먹기도 하고.

    다리도 아프고 하지만 이게 뭐라고 심장이 떨리고 아드레 나린이 널뛰어서 그냥 행복합니다.

    강한 진통제를 준비해서라도 갑니다.

    친구들은 그냥 걷기도 힘든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일주일 내내 비 예보에 성치 않은 발목으로 왜 가려고 하냐고

    하는데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그런 장애물들이 아무렇지 않은 게 됩니다.

    삶을 살면서 내가 바라는 해가 화창한 좋은 날씨만 만나며 살 수 있는 거 아니고 건강한 발목으로 가서 첫날 발목을 

    접지를 수도 있는 것이고, 비가 온다는 정말 진정한 레인 포레스트를 경험하며 걷는 길이 될 것이고 발목을 이미 다쳤으니

    한걸음 한걸음 더 조심하며 트레킹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미쳐서 했던 일이 뭐가 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일의 결과들이 어떠했나 하는 것도요.

    미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좀 쉬운 일에 미치지 왜 이리 힘든 일에 미쳤는지...  제가 제대로 미치긴 했나 봅니다.

    왼발 앞에 오른발,  오른발 앞에 왼발.

    한 번에 한 발자국씩 천천히 그렇게 완주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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