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내 인생을 위해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2019. 11. 14. 06:00
    728x90

     

    어려서부터 소원은 부모님의 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나의 학창시절이 얼마나 힘이 들었던 것인지는 중3때 손목을 그었던 일과 고2때 가출을 했던 일로

    간단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결혼을 하고 엄마의 삶을 살면서 아이로서의 힘들었던 나의 그 시절의 기억은 잊어버리고

    부모님이 얼마나 부모님으로 최선을 다하셨었는지에 대한 기억만 간직하면서 부모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었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은 이혼을 하면서 더 커져갔고 이제 이혼을 해서 시댁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감이 사라지다 보니

    친정 부모님을 보살피는 것이 당연한 나의 삶이고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나의 생각과 삶을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것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나의 독립을 방해하고 있었는지도...

     

    딸의 이혼을 좋아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허락해주셨던 부모님들은 여전히 이혼한 딸이

    당신들 삶에 큰 창피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으셨고 가끔 제게 그런 말씀을 직접 하시는 것으로 그분들의 생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럴때 마다 내가 왜 그렇게 어렸을때 그분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 소원이었었는지에 대한

    아픔이 새록 새록 다시 기억이 났습니다.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시고 끊임없이 너는 왜 그 모양이냐 혹은

    너는 왜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아이냐라고

    말씀으로 혹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매질로 나를 상처입히셨던 기억들.

     

    제가 이혼을 하고 부모님께 듣는 말들

    "주변에서 니가 이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게 해라.  그 누구도 절대로 알아서는 안된다."

    남의 이목이 딸의 마음의 상처나 행복보다 더 중요해서 아직도 전남편이 함께 한 가족사진을 거실 한복판에 걸어두신 아버지.

     

    "나는 그래도 가정은 지켰으니 100점 짜리 엄마고 넌 이혼을 했으니 0점 짜리 엄마야"

    "니 아들이 잘 자라줘서 캐나다 최고 대학을 갔으니 너와 이 엄마를 살렸다.  이 엄마는 딸을 잘못 키워서 그 딸이 이혼을 하였고 

    그 딸은 못나서 이혼을 하여 니 아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으니 우리는 얼마나 큰 죄인이냐.  

    그런데 니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저렇게 잘 자라주는 것으로 우리를 죄인에서 나올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 아이가 우리 두 모녀를 살린것이야.  고마워해라. "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지만 그 사랑이 과해서 저렇게 말씀으로

    내 마음에 못을 박고 나에게 거짓 죄책감을 

    심어넣어주시려고 하고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하시려고 하시는 것은 다 큰 딸로서 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못된 딸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내 인생을 위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들을 대학 보내고 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것이라는 계획을 전면 수정 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사는 내가 되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상처주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인생에 가까이 두지 않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려는 사람을 내 인생에 두지 않겠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나로 사는 것을 억누르려는 사람은 내 인생에 두지 않겠다고.

    나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아들에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는 않겠다고.

     

    이런 결정을 하고 시선을 돌리고 계획을 수정하고 나니 더욱 내가 당연하다고 겪고 있었던 억압과 부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나온 시절의 내가 참 슬퍼집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

    이제라도 내 인생을 위해 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 그리워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함께 살면서 서로를 할퀴며 상처를 내며 사는 것 보다

    나을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어려서부터 여자는 아빠의 보호아래 아니면 남편의 보호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못 떨쳐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아이로 키워져서 그 꿈이 없어진 여자는 다시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그 동안 니 인생을 살아라 하는 말은 어려서부터 들었던 말이 아니라 내 인생에 내가 돌보며 가야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됨으로 나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했었던것 같습니다.

     

    이제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이런거 다 벗어던지고 73년생 김미리의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물론 얽혀있는 관계들이 저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도 내 삶에 후회하지 않게, 미안하지 않게...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살아봐야 아들에게도 너의 삶을 살아라라는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너의 행복을 위해 너의 삶을 살아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입니다.

     

    그리고 제가 행복하게 저의 삶을 사는 것이 부모님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드리는 일 일것 같아서 입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입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생각도 깊어갑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