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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만에 기름 냄새 풍겨봤네요.
    캐나다 (Canada)/캐나다에선 뭐해먹지? 도시락포함 (what to eat) 2021. 2.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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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기 전에 저희 집은 제사를 지내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불교이셨지만 아빠가 둘째라서 제사는 큰집에서 지내서 그랬는데요.

    제가 어렸을때부터 큰집과 불화가 많으셨던 엄마가 큰집을 가시기를 거부하시며 큰 아버지가 저희를 못오게 하셔서

    명절이면 외롭고 서러워하시는 아빠의 원망어린 말씀을 많이 들으며 자랐었습니다.

     

    아빠보다 20살이 많으셨던 큰아버지의 욕심으로 아빠 몫의 유산까지 다 큰아버지가 가져가시며 시작된 불화였는데요.

    부자집 아들이라고 받을 유산이 많다고 엄마를 꼬시셨던 아빠를 믿고 결혼을 하셨던 엄마에게 아무것도 없이 수저만 가지고 

    시작을 하라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일입니다.  거기다 직업도 계약직이셨는데 엄마한테는 속이고 결혼을 하셔서

    결혼 하고 몇달뒤 백수가 되신 아빠와 시댁의 경제적 도움없이 결혼생활을 하시는 것은 엄마에게는 녹록치 않으셨을 텐데요.

     

    보태주는 것은 없으면서 끊임없이 요구만 하던 큰집에 지치셨던 엄마는 인연을 끊으셨지만 아빠는 그러실 수가 없었는데요.

     

    어린나이에도 엄마없이 아빠와 오빠와 명절에 큰집을 가면 여자애라서 그랬는지 눈치가 참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애들은 엄마들이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놀았지만 부엌에 들어가 일할 엄마가 같이 오지 않은 저는 그냥 놀면

    욕을 먹을 것 같아서 어린 고사리 손으로 부엌에 들어가 잔 심부름을 하거나 방바닥을 걸레로 훔치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시댁과 연을 끊은 엄마때문에 외로운 명절을 보낸다고 신세한탄하시던 아빠를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만 조금 희생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텐데 엄마는 왜 그렇게 못하시는지 원망을 하기도 하고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하고 맹세를 하곤 했었는데요.

     

    그 당시에 대학을 나오시고 교편생활을 하던 엄마가 그때는 당연시 되던 아빠의 반복되는 외도와 폭력을 견디시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치셔서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요구만 하는 시댁 (시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시댁)에 발걸음을 끊는 것으로 힘든 그녀의 삶에 아빠를 향한 작은 복수를 하며 사신것은 아닌지 그냥 그 명절의

    시간에 쉬는 것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필요했을 정도로 약했던 그녀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이었던 거라는 것은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늘 엄마와는 다르게 살꺼야라고 맹세를 했던 아이였던 저는 결혼 후 임신과 동시에 전업주부를 택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 전업주부가 되면서 나만 희생하면 여러사람이 편해지는 일을 나도 조금은 편하며 하고 싶었었는데요.

     

    그렇게 없는 집 종갓집 종손 맏며느리를 18년을 하였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라 제사상에 절을 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며느리라 괜찮다고 하시던 시아버님앞에서 열심히 제사음식을 했었는데요.

    시집가서 얼마 안되어 제사를 명절때만으로 정리를 해 주시고 이혼하기 몇년전에는 명절도 이제 제사상은 절에서 하는 걸로 하시겠다고

    다 절로 가져가셔서 집에서 하는 명절 제사까지 없애주셨던 시아버지께는 참 감사하다 싶었었네요.

    하지만 전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시댁을 가서 며느리로서 요구되는 당연한 노동들을 하는 것은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는데요.  전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가정을 꾸리는 것 만으로 충분히 힘이들었기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는 것은 정말 힘든일이었기에 직장생활을 하시던 엄마가 명절에 시댁에 발길을 끊으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큰집은 여자와 남자는 겸상도 하지 못하는 여자는 고기도 못먹게 하시는 그런 충청도 양반댁이어서 아빠의 외도나 폭력쯤은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그런 집에서 며느리로서의 의무까지 하기는 많이 힘이드셨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명절때마다 제사상 차리기 위한 음식을 하고 산 세월이 십수년이다보니 이혼을 하고 캐나다에 살면서 그런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는데도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기에 이번 음력설에는 간만에 집에 기름냄새를 풍겨봤는데요.

    그런 세월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이 힘들게 느껴지고 쉽게 시작하게 안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쉽게 해 내는 저를 보면서

    '그래, 그 세월에 배운것도 많았어' 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특히 전을 안 만들어 먹고 있었으니 정말 간만에 기름냄새를 풍겨봤습니다.

    대충 마트에 가서 있는 재료 사고 냉동고 털어서 했는데 명절 분위기 나는 한접시가 되었습니다.

    돼지고기도 등심으로 사와서 직접 다져서 만든 동그랑땡

    몇년만에 맛살과 햄을 샀는데요. 한국식으로 하고 싶었기에 한국 마트에서 파는 맛살과 햄을 사온건데 햄을 썰면서 느낌이 이상해서

    포장지를 다시 보니 어육으로 만든 햄입니다.  고기로 만든 햄은 한국에서 들어오지 못하나봐요.

    생긴건 그냥 햄이었는데 어육으로 만든 햄은 또 처음 봅니다.  맛살은 냉동으로 들어와서 해동을 했더니 어찌나 퍼석한지...

    에효...  다시는 이 재료들로는 안 할듯 합니다. 맛살로 하트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냥 똑똑 부러져서 삼각전을 만들기도 했네요.

    마트에 생표고가 있어서 신나게 들고 왔는데요.  한국에서 보던 장흥의 표고버섯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한국이 더 그리운 이유는 음식때문인것 같아요.  아무리 이곳에 비슷한 재료들이 있다고 해도 도저히 한국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한국이 그리워서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더 해보았던 이번 음력명절이었네요.

     

    무엇보다 친구에게 나누어주고 좋아하는 친구를 보는 것이 참 좋았는데요.

     

    "야, 내가 살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명절 음식을 받아서 먹어보는 날도 오다니~  너무 좋다~ "

    라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역시 아줌마들에게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다들 행복한 음력 설 보내셨죠?  오늘 더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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