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그녀를 기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 2022. 5. 23. 06:00
    728x90

    작년 11월에 작성한 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간호사이자

    수녀님인 그녀가 한국에 온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1년이었다.

    평생을 한국사람들 그 중에서도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신 그녀를 처음 만난건 2014년 이었다.

    영어이름 Mariam Cousins, 한국이름 고 명은.

    그녀가 보내 주신 주소로 찾기가 쉽지는 않았던

    아주 평범한 동네 주택가 한 복판에 있던

    그녀의 집, 아니 그들의 집.

    명패도 하나 달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집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가 들키지 않길 바라는 소망처럼 평범으로 둘러친 그냥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안에서 이뤄지고 있던 엄청난

    사랑과 헌신.

    그곳은 세상사람들이 다 꺼리는 에이즈환자들의

    쉼터였다.

    그리고 그곳은 미리엄 수녀님의 집이었다.

    1989년 '미아리 텍사스' 촌에 들어가서 창녀들을

    위해 봉사를 시작하신 수녀님이 에이즈에 걸린

    창녀를 만나고 그들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신 후

    1997년에 한국 최초의 에이즈 환자 쉼터를

    여셨고 그렇게 밖으로 들어내 놓고 활동을

    하시기에는 사회적 편견이 너무 심해 아무도 쉽게

    선뜻 하지 못하던 일을 하시고 계셨다.

    오갈데 없는 에이즈 환자들을 돌봐주고 그들이

    죽고나면 장례식을 치뤄주는 일.

    그 모든 일을 혼자 하시며 후원금 모금도 직접

    하시던 수녀님이 내가 봉사하고 있던 단체에

    후원금 요청을 하셔서 후원금 지급을 위한

    조사를 나갔다가 처음 뵌 수녀님.

    한국말에 능숙한 외국인 선교사님들을 많이

    알아서 그 분의 능숙한 한국말은 놀랄게 아니었으나

    그 분의 사역은 정말 감동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그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계시던

    미리암 수녀님의 모습에서 문둥병 환자를 어루만져

    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벅찬 감동에

    조용히 눈물을 훔쳤던 기억.

    그런 분이 하시는 일에 돈을 기부하는 것은 가장

    쉽고도 제일 작은 일이기에 방문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사회 회의를 통해 후원을 결정했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변화가 생겨 이혼을 하고 한국을

    떠나 잊고 살다가 어느날 마주한 그녀의 부고.

    2019년 8월 병원에서 수술받으시다 돌아가셨다는

    신문기사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그 센타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그 센타는 그대로 있을까?

    이제 에이즈는 정복한 질병인데 그 분들의 삶은

    조금은 덜 고달파졌는지, 수녀님은 마음편히

    눈을 감으셨을지....

    한국에 그 센타가 여전히 있고 에이즈 약이 필요하다면 무상으로 후원해 주겠다는 미국 제약 회사의 후원약속을 가지고 왔는데...

    몸이 괜찮아지고 나면 그곳 찾기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춘천에 있다는 수녀님 묘를 찾아가 꽃이라도

    한송이 놓고 오고 싶다.

    http://m.koreatimes.co.kr/pages/article.asp?newsIdx=274363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