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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에서 시작하는 까미노 길을 걷다가 제주 올레 생각이 났다.카테고리 없음 2025. 4. 6. 14:16728x90
까미노길을 조금 걷다가 만난 터키에서 왔다는 사디는 내가 까미노길을 조금만 걸어볼 생각이라고 말하자 왜 전체를 걷지 않냐고 물어왔다.
"부분적으로 걷는 게 어때서? 왜 전체를 걸어야 해?"
그녀와의 대화에서 나의 까미노 답을 찾았다.
남들이 다 걷는다고 하니 걷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었나 보다. 나는 그냥 걷고 싶지 않다로 결정이 되었다.
걷다가 결정이 났다.
배낭을 메고 긴 거리를 걷는 것은 더 험한 코스인 미국과 캐나다에서 많이 했던 나이니 산티아고 순례길의 힘든 정도가 나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순례길을 갈 만큼의 이유가 현재의 나에게는 없었다.
그랜드 캐년에서 텐트에 식량에 물에 모든 것을 메고 걸어 내려가서 그 바닥의 계곡 캠핑장에서 백팩 캠핑을 하고 다시 올라왔을 때도 이혼의 아픔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을 때였고 그 아픔이 나에게 큰 에너지로 다가와서 그랜트 캐년 백팩킹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었고,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그 험한 트레일을 일주일 동안 완주를 했을 때도 이혼을 했으니 이건 해내야지 왠지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을 지도 몰랐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를 해서 했고 그곳에서의 좋은 기억은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많은 캐나다와 미국 산행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게 된것 같다.
남들이 보는 것 처럼 혹은 내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체력이 좋지는 않다는 것.
많은 산행과 운동으로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더 커서 늘 무리를 하게 되고 그 무리의 끝은 그닥 좋지 않다는 점.
이제 그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것 같다. 83세의 할아버지가 하시고 77세의 할머니가 하시는 까미노라고 해서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다.
무엇보다 포르토에서 시작하는 까미노의 해변길은 너무 제주도 같았다. 굳이 까미노를 걷지 않아도 집 근처 둘레길을 걸어도 그게 내 삶의 까미노이지 않을까. 외국에서 걷는 길은 사람들이 적고 미세먼지가 없어서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토에 오기 전에 올라갔던 인왕산과 안산의 주말 인파는 정말 대단했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까미노를 좋아하고 꿈을 꾸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3개월 동안 2700키로를 독일에서 시작해서 스페인까지 걸었다는 분을 만났다. 그분은 독일 신문사 저널리스트였는데 왜 걸었냐고 물었더니 할 수 있어서 했단다. 아주 현실적인 대답. 그 뒤로 13년째 매년 까미노를 부부적으로 걷고 있다고 했는데 가까워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66세의 그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1700키로를 프랑스에서 부터 스페인까지 걸으신 할머니를 만났고 그 뒤로 매년 그 할머니와 함께 일년에 한번 까미노에서 만나서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 그 두사람의 우정이 정말 부러워보이기도 했다.이분들 이신데 77세의 니콜은 자녀가 4명 손주가 5명 증손주가 2명이 있는 할머니셨다. 66세의 독일 저널리스트 아놀드도 집에 와이프가 있는데 매년 할머니와 까미노에서 만나서 같이 걷는다고 했다. 이 두분의 우정이 참 좋아보였다. 나도 니콜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몸이 탄탄하니 건강해 보이시고 좋았다. 니콜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니콜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프랑스분이라 아쉬웠다. 영어 불어 독일어를 하는 아놀드가 통역을 해 주었지만 ...
이번에 내가 까미노를 걷지 않겠다 결정하는 이유는 내 인생이 너무 편해서 그런가 보다. 이 순례길을 걸어야 하는 종교적인 이유도 없다. 나의 죄는 내가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을 믿고 내 죄를 회개하는 순간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 순례길을 걸으며 죄사함을 구할 것이 아닌 내 삶의 매 순간에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고 매일 성경을 읽으며 하고 있는 나의 일상이기에 까미노가 특별해 질 이유가 없고. 뭔가를 해 냈다는 트로피로 가져가기에는 길이 너무 쉽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북미의 험하고 힘든 산행을 많이 했던 사람으로 하는 생각임) 매일을 제주도 같이 비슷비슷한 자연을 보며 걷기에는 포르토라는 도시가 너무 매력적이다. 같은 시간을 써야 한다면 그냥 포르토에서 길게 있기로 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게 좋아서 까미노를 온다는 사람들을 만나며 까미노 만큼 그게 쉬운 여행이 또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길을 걸으며 심심해지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좋고 또 다들 같은 것을 하고 있으니 통하는 게 이미 있고 대화를 시작하기에도 편하고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까미노이다. 아마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틴더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고 오래 지켜보며 알아갈 수 있는 그리고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지기도 쉽다. 걷는 코스를 살짝 바꾸거나 걷는 속도를 다르게만 해도 헤어질 수 있으니.
무엇보다 많은 돈이 들지 않아서 좋지 않나 싶다. 근처에 비싼 레스토랑도 없고 내일도 걸어야 하기에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없고 담백하게 누군가를 만나서 (혹시 만나게 되면) 큰 돈 쓰지 않고도 누군가를 알아 갈 수 있으니 요즘 젊은 이들 사이에 더 유행이 아닌가 싶다.
아니 그렇게라도 젊은이들이 밖으로 나오는 게 참 좋아보인다. 컴퓨터 게임만 하고 집에만 있는 것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