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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을 찾아 떠난 여행
    전세계 백패킹 2026. 3.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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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3월 10일 - 13일
     

    꽃소식이 들려오는 3월 초순이라지만, 몸 끝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맹렬한 기세를 떨치던 날이었습니다. 남도의 꽃소식을 따라 아들과 함께 백패킹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구례의 산수유와 광양의 매화. 늘 사진과 소문으로만 접하던 그 풍경을 직접 마주하고 싶어 백패킹 커뮤니티와 AI의 조언을 빌려 꼼꼼히 동선을 짰습니다. 백패킹이 처음인 아들을 배려해, ‘백보킹’ 수준으로 접근이 수월한 구례 사성암 뒷마당을 첫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구례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평일임에도 유명 맛집 앞은 인산인해였고, 대기 번호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뒷순서에서 재료 소진으로 영업이 마감되었습니다. 운 좋게 마지막 손님이 되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다슬기 수제비의 국물 맛은 준수했으나, 정작 다슬기 무침은 다슬기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양념 맛이라 내심 실망이 앞섰습니다. 세 번의 놀라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사성암으로 향했습니다.
     
    절벽 위에 위태로우면서도 장엄하게 세워진 사성암은 올 때마다 경이로운 곳입니다. 다행히 사성암의 스님들과 공양주분들은 백패커들에게 무척 호의적이었습니다. 따뜻한 눈길과 함께 “밤에 많이 추울 텐데 괜찮겠느냐”는 다정한 걱정을 건네주시는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했습니다. 중고 거래로 미리 챙겨온 핫팩의 온기를 믿으며 오산과 매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올랐습니다.
     
    적당한 데크 자리를 찾아 걷던 중, 스틱(산행 폴) 없이 걷는 아들이 내심 걱정되었습니다. 과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내려오다 발목을 접질려 고생했던 제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 번 다친 발목은 고질병이 되기 쉽기에, 산행에서 폴은 생명줄과 같습니다. 제 것을 빌려줄 수도 있었지만, 체격이 다른 아들이 쓰다간 자칫 부러질 수도 있다는 경험적 판단에 우리는 무리하지 않고 가까운 데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이토록 조심성을 키워주는 일인가 봅니다.
     
    비박의 철칙은 ‘머문 듯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등산객이 완전히 사라진 사성암의 마지막 셔틀버스 시간이 지나서야 텐트를 쳤습니다. 일몰은 기대만큼 화려하지 않았지만, 밤하늘에 쏟아질 듯 박힌 별들이 서운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화기 엄금 구역이라 편의점에서 사 온 김밥과 소시지로 소박한 저녁을 먹고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핫팩의 따뜻한 온기가 서린 텐트 안, 하얀 서리를 뚫고 맞이한 아침은 ‘어젯밤도 무사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선물했습니다. 다만, 지리산 자락까지 자욱하게 내려앉은 심각한 미세먼지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멋진 일출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축제 직전의 구례는 아직 꽃망울을 다 터뜨리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어진 점심 식사에서 만난 닭 육회와 산닭 구이는 그 아쉬움을 씻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광양 매화마을. 그곳엔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봄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전날의 추위를 씻어내고자 하동의 저렴한 모텔에서 하루를 쉬어갔고, 다음 날 매화 향기에 취해 백운산 둘레길을 걷다가 비가 내리자 인근 도서관에 들어가 빗소리를 들으며 평소 읽고 싶던 책에 침잠했습니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이 추위 속의 텐트 생활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고행이었나 봅니다. 미안한 마음에 일정을 단축해 금요일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광양에서 맛본 섬진강 벚굴이 화근이었습니다. 익혀 먹으면 괜찮겠지 싶어 쪄서 먹었는데, 집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지독한 구토와 설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저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만약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해서 남해 어느 섬의 텐트 안에서 이런 사달이 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식중독에 걸리지 않게 해주셔야 감사한 거지, 아픈데 뭐가 감사하냐”며 투덜댔지만, 저는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벚굴을 선택한 건 우리였고, 비록 아프긴 하지만 이 고통을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서 겪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말이죠.
     
    인생이 그렇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고통은 감사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감사 일기를 쓰자면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3월의 어느 특별한 봄나들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