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아빠와 함께 살아가기

나쁜 아빠가 치매에 걸리셨다.

하늘은혜 2025. 6. 17.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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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1일에 적었던 일기. 
이제 시작되는 치매아빠와 살아가기 글의 시작이 2021년 10월 이었음을 남기기 위해서.
 
어려서 부터 아빠의 별명은 독불장군에 폭군 네로이셨습니다.
당신의 기분 그대로 가족들에게 표현을 하시고 그것을 가정의 법으로 만드셨던 분이셨지요.
그 기분또한 한여름의 변덕쟁이 날씨처럼 언제 개이고 언제 천둥번개가 칠지를 예상하기 힘들어서
늘 아빠의 심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었습니다.
 
아빠의 손은 가볍기가 그지 없어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밥을 먹다 농담처럼 말 대꾸
했다가 바로 뺨을 맞았던 기억은 어린시절 그 보다 더 심하게 맞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는 했었습니다.
 
어릴때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맞았다고 생각해서
늘 조심하며 아빠 눈치보며 사느라 맞아도 내가 잘못했으니 맞았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커서 맞으니 알게되더군요. 이건 그냥 아빠의 폭력이다. 내가 어려서 맞았던
것도 내가 잘못했던 것이 아닌 아빠의 폭력.
 
25살의 나이에 친정에서 도망치듯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집만 벗어날 수 있으면 살 것 같았거든요.
 
결혼으로 나의 도망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 멀리 이국땅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아빠처럼 반복된 외도를 피지만 생활비는 주는 남편을 아빠보다는 나은 남자라 생각하며 참고 살다가 
마지막 상간녀가 제 블로그를 읽으며 저를  비웃고 있는 것을 보며 18년 결혼생활에 14년 동안 여러명의 상간녀를 참고 살던 결혼 생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이혼하고 7년차.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한국에 혼자 사시는
아빠가 치매에 걸린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곳의 행복한 생활을 잠시 뒤로하고 한국에 가서
아빠를 돌볼까하는데....
과거 아빠한테 받았던 상처가 다시 올라오네요.
 
제가 고등학교때 바람을 피시는 아빠를 증거를 잡아
엄마에게 말해서 집안이 시끄러웠던 날
 
조용히 저를 차에 태워 사람없는 산 아래에
주차를 하시고 제게 하셨던 말씀
 
"너네 엄마 성격일지? 내가 너네 엄마랑 사는 게 너무 힘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네 때문에 가정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사는데 그래도 나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해서 그 여자를 만났는데. 니가 그걸 엄마한테 말하면 어떻게 하니? 오늘 엄마 아빠 싸운 건 온전히 니가
잘못해서 그런거야."
 
라고 말씀 하셨던 아빠.
 
그때의 기억이 전남편이 제게 '내가 바람을 피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해도 뭐라고 반박을 못하고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고 저 스스로를 반성하며 참고 살게 했었습니다.
 
아빠한테 받은 상처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제가
치매아빠와 잘 살 수 있을까요?
 

동사무소 직원이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님 치매이신것 같으니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전화를 받기 불과 일주일전에도 아빠와 1박 2일의 여행을 다녀온 오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라 많이 놀랐었는데요.

 

그 전화를 받고 오빠가 이역만리에 사는 저에게 전화를 했고 그렇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치매이야기.

 

나쁜 아빠는 나에게만 나쁜 아빠가 아니었기에 나쁜 아빠가 치매가 걸리셨다는 전화에 저는 사실 아빠보다

오빠와 엄마가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겠다고 이야기는 했으나

코로나 시국으로 한국국적이 없는 저에게 지금의 한국은 제가 들어가고 싶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닌

특별 비자를 신청해서 받아서 들어가야 하는 나라. 

일단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준비를 하고 비자를 받는데 최대 2달까지 걸린다니 멀리서 할 수 있는 정리와 생각들을

해 봅니다.

 

아빠의 치매를 오빠에게 전화를 받고 몇일 뒤 엄마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오빠를 데리고 도망을 갔다가 아빠한테 다시 잡혀서 엄청 두드려 맞고 결혼생활을

계속 하셔야 했었던 엄마에게 아빠는 참 나쁜 남편이었습니다.

 

반복되는 외도와 폭력으로 엄마를 의부증에 불안장애가 있는 분으로 만든 장본인이 아빠셨으니요.

그래도 이혼은 하실 생각이 없는 분들이시라 엄마는 30년 직장 생활에서 은퇴를 하시고 아빠를 떠나셨습니다.

 

두분이 따로 사시면서 전화통화는 커녕 자식들을 통해 안부를 듣는 것도 싫어하시는 상태로 사신지가 10여년째.

 

그 사이 아빠는 위암 수술도 받으셨었고 몇년전에는 척추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하셔서 8개월 병원 생활을 

하실때도 엄마는 아빠한테 전화는 커녕 병문안 한번을 가 보지 않으시는 분이셨지요.

 

"너네 아빠 죽어도 나한테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 라고 평소에 이야기 하는 분이셨고

아직도 아빠와의 옛날일을 떠올리시면 손부터 떨리시며 눈물을 흘리는 분이시니 엄마 속에 쌓인 한도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빠의 치매를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워낙 무슨 일이 있을때 꿈을 꾸시는 분이라 심상치 않은

꿈을 꾸셨던 엄마는 제게 무슨 일 있냐고 계속 물으셨고 다른 걱정을 하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 하신 엄마의 말씀에 너무 놀라서 저는 제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내 꿈이 그랬구나... 너랑 오빠가 많이 걱정되고 부담스럽겠네... 내가 정리하고 올라가마."

 

오빠의 전화를 받고 나서 과거의 상처와 함께 올라오던 내 아픔도 너무 아팠는데

저보다 훨씬 아픈 기억이 많으신 엄마의 저 말씀은 저를 너무 놀라게 했습니다.

 

재활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시던 아빠에게 하도 간병인이 싫다고 하셔서 그럼 엄마한테 오시라고 할까요?

하고 여쭈었을 때 아빠가 하셨던 말도 아직 기억이 났었구요.

 

"아이고, 너네 엄마 오면 나 죽는다. 혼자도 힘든데 너네 엄마? 절대로 안돼~~~ "

 

아빠만 엄마에게 나쁜 남편은 아니었었다는 것을 같이 살았던 저희는 알기에 아빠의 말도 이해를 했었습니다.

엄마도 아빠한테 아빠의 최악의 모습을 끌어내는 그런 분이셨었거든요.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까 꿈을 꿔 보기도 합니다.

 

일단 제가 한국으로 들어가서 상황보고 다시 이야기 하자고 정리를 하겠다는 엄마도 말리고 요양원을 알아보겠다는

오빠도 말렸습니다. 저에게는 들어오지 말라는 두사람에게 저의 책임의 부분은 제가 지겠노라고 이야기 하구요.

 

지금도 전화하면 예전과 똑같이 통화를 하시는 아빠는 아직 아주 초기이신거로 보이시거든요.

 

아빠의 치매, 가족의 과거를 다시 조명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