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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ibs creek에서 Walbran creek 11km 비가 와서 제일 힘들었던 날.
    캐나다 (Canada)/산행(Hiking) 2019. 8.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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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오후에 확인한 일기예보가 맞았습니다.
    핸드폰 서비스나 인터넷 서비스가 전혀 되지 않는 웨스트코스트트레일에서는 위성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비상사태를 위해 준비를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위성전화기로 날씨를 확인했는데 밤 12시부터 비가 와서 그다음 날 오후까지라고 하더니 새벽에 텐트를

    때리는 세찬 빗줄기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오후 12시에 빗줄기가 잦아 들꺼라고 해서 천천히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 전날 캠핑장에서 오늘 저희가 가야할가야 할 코스를 올라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저희가 가야 할 코스는 너무 쉽고

    해변가 길이 예쁘고 하니 천천히 잘 즐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마음을 편히 먹고 있었는데요.

    그게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자리잡아 두었던 사이트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던 다른 팀원들과의 대화가 쉽지 않았고

    그들은 너무 늦게 일어났고 그들의 사이트와 저희 사이트 사이에는 전날은 없던 강이 생겨있었는데요.

    밤새 내린 비 덕분에 없던 강들이 생겨나서 쉬운 코스는 난데없이 난코스가 되고 있었습니다.

    강물은 불어나고 있어서 강의 넓이가 넓어지고 있고 밀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바닷물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으니

    잘못하다가는 진퇴양난하기 딱 좋은 코스가 되어버렸는데요.

    뒤늦게 부랴부랴 저쪽 팀원들을 재촉해서 떠날 준비가 다 되었을 때는 캠핑장에 남아있는 다른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앞선 다른 가족이 있어서 그들이 헤쳐나가는 길을 보며 얼른 길을 재촉했는데요.

    그전에 비가 오니 이렇게 텐트 안에서 아침을 챙겨먹었습니다.

    어제 크랩쉑에서 챙겨 온 음식이 새삼 고마워지던 아침.

    평소 먹는 양보다 더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아서 준비해 가 음식이 하루 분량 정도가 부족했었는데요.

    크랩쉑에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날 이동 거리는 대부분이 해변가 길이었는데요. 늦게 출발을 해서 바위가 아닌 모래사장을 걸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비로 젖은 배낭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으며 해변에는 간밤의 비로 인해 없던 강들이 생겨나 있어서 

    그 강들을 안전하게 건널 길을 찾아보고 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체력도 많이 소모가 되었습니다.

    산길도 비로 인해 너무 미끄럽고 진흙탕 길이 되어 있었고 모든 신경은 다치지 않는데 쓰다 보니 신경도 많이 날카로워져 

    있었습니다.

    비로 인해 미끄러운 나무뿌리 하나만 잘 못 밟아도 발목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니요.

    그렇게 발목을 삐면 남은 트레킹은 너무도 힘들어질 것이 뻔하니 다치지 않으려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해서 나가야 하는

    게 정말 힘이 들었었습니다.

    그 전날 어떤 이에게는 제일 쉬운 길이었다는 길을 바로 그 다음 날 비와 함께 너무 힘들게 걷고 나니 드는 생각이 같은 길을 

    간다고 해도 날씨의 상태에 따라 정말 힘듦의 정도가 두세 배는 더 힘들어지는 코스가 웨스트코스트 트레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섣불리 누군가에게 그건 쉬운 길이었어 라고 이야기할 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나의 자라온 환경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내가 걸은 그 길의 그날의 컨디션은 다른 이의 것과는 정말 다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나에게 쉬운 길이었다고 다른 이에게도 쉬운 길이 될 것이라고는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구나 하는 것을

    몸소 체험을 할 수 있었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할수록 점점 더 조언을 한다는 것이 어려워 지고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의 무게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 들의 말을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우리의 경험을 다르게 만들어줄 변수는 세상에 너무도 많으니까요.

    그렇게 힘든 길을 마치고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비가 멎어서 텐트를 치기에는 좋았습니다.

    다들 모닥불을 피우고 젖은 양말과 등산화 옷 등을 말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다들 젖어서 힘든 하루를 보내었었습니다.

    이 복작복작한 캠핑장도 비가 오지 않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 텐트들 중에 사진의 왼쪽 앞부분에 텐트 같지 않은 작은 공간이 보이시나요?

    호주에서 오신 70세 할아버지의 타프로 만든 간이 텐트였습니다.

    7킬로 배낭으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텐트도 없이 그냥 타프 한 장을 저렇게 삼각형으로 치시고 

    그 안에 침낭을 넣어서 잠을 주무시고 계셨는데요.

    이 캠핑장이 마음에 들어서 3박을 하셨다는 할아버지의 캠핑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작년에 20년을 함께 사셨던 부인이 암으로 돌아가셔서 이렇게 혼자 산행을 오셨다는 할아버지.

    부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관절염을 앓고 있던 사람이라 그 관절염 약으로 인해 암이 와서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다는데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했던 말씀이 "이제 당신의 삶을 사세요. "

    였다고 하네요.

    아픈 할머니 옆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산행을 많이 못하셨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하셨던 말씀이셨겠지요.

    그 뒤 할아버지는 할머니 말씀처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시는 삶을 사시고자 이곳까지 오셨다고 하셨네요.

    할아버지의 이름 이니셜과 할머니 이름 이니셜을 부이에 새겨서 걸어두시는 것을 보며 참 감동적이기도 했었는데요.

    매일 저녁 캠핑장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웨스트코스트트레일 중에

    제일 좋은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토론토 대학의 교수님도 만나고 이런 저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네요.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나면 제가 종종 했던 질문이 이제 곧 아이가 내 품을 떠나는데 나에게 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십니까 하는 것이었는데요.

    대부분의 분들이 "즐겨~ "라고 해 주셨네요.  그 뒤에 말이 더 웃겨서 빵 터지고는 했었는데요.

    "애들 다시 돌아와, 그러니 그전에 즐겨~~~ "  였었네요.

    요즘 애들은 대학을 위해 집을 떠났다가도 곧잘 돌아들 오니 예전처럼 정말 떠나지는 않나 봅니다.

    되려 애들이 안 떠나서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으니요.

    호주에서 오신 할아버지가 만들어 두신 모닥불이 왼쪽에 크게 있어서 저희는 모닥불을 따로 만들지 않고 거기에 함께

    즐겼습니다. 할아버지께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드리며 말이지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요.

    그다음 날 아침은 맑은 날씨로 시작을 하였는데요.

    이런 사다리로 시작을 해서 하루 종일 사다리를 많이 오르고 내려야 하는 사다리 데이였습니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해변가 길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네요.

    매일매일이 새로운 웨스트코스트 트레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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