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아빠와 함께 살아가기

치매 아빠와 첫번째 여행 - 충북 영동

하늘은혜 2025. 6.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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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치매가 더 나빠지기 전에 함께 여행을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에 고집불통에 폭군 네로셨던 아버지는 치매가 진행되면서 고집은 더 세지시고 함께 여행은 커녕 식사를 함께 하기에도 쉽지 않은 분이 되어버리셨다. 그나마 오빠와 아빠는 아빠의 치매가 시작하기 전에 함께 많은 여행을 하며 추억을 쌓았는데 타국에 살고 있던 나는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해서 아쉬웠다.  고집불통인 아빠가 안전하게 혼자서 잘 사시는 것만 확인을 하며 아빠의 치매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빠에게 망상이 시작이 되었다. 망상이 시작되고 현실을 잘 구분 못 하는 아빠는 어딘가에 누군가와 늘 대화를 하시더니 세계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쌓아두면 뭐 하냐며 아빠가 여행 가는 모든 여행 경비는 내가 이메일만 보내면 거기서 돈을 다 내 줄것이라며 여행은 공짜가 될 것이니 떠나자고 하셨다. 아빠의 망상이 참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빠의 이런 망상이 아니라면 아빠와 여행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늘 근검절약이 몸에 배신 분이 좋은 호텔로 다니는 여행을 하자니 정말 치매로 인한 망상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어서 세계여행을 가자는 아빠에게 우선 국내 여행을 먼저 해보자고 꼬셨다. 그리곤 아빠와의 추억 여행을 시작하였다.
 
첫번째 여행는 충북 영동 아빠의 고향이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출가외인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큰 집을 거의 30년 만에 처음 찾아가 보는 길이었다. 물론 치매로 인해 아빠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나는 내 어린 시절에 기억을 더듬거리며 큰 집을 찾아 나섰다. 다행인 것은 큰집은 그 시골 동네에서 옛날에 막걸리를 만들어 파는 양조장을 했던 집이라 근처에 가서 주민들께 여쭤보니 그 집이 어디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사촌 큰 오빠가 여전히 그 집에서 살고 계셨다. 그 동안 사촌 큰 오빠의 전화번호가 바뀌셨는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냥 나선 여행길이었는데 마침 집에 계셔서 참 반가웠다.  그렇게 만난 큰 사촌 오빠와 함께 새로 만들었다는 가족 납골당을 찾아가봤다.
어렸을 때는 늘 선산에서 찾아뵙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산소는 파묘가 되어 새로 조성된 가족 납골당에 계셨다. 한국에서도 그런 가족 납골당을 처음 가 봤는데 작은 공동묘지처럼 유골을 땅에 묻는 방식으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큰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찾아뵙기가 쉬워졌고 관리도 한층 쉬워져 보였다. 서울에서 부터 들고간 아빠가 오래전부터 준비해 두셨던 조화 다발을 묘지에 꽂고 아빠는 제일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 비석 앞에서 늦게 와서 죄송하다며 큰 절을 올리셨다.
 
사촌 오빠가 네 아빠가 돌아가시면 이 자리에 묻히실 거야. 하며 아빠의 자리를 보여주셨는데 마음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게 또 가볍게 농담처럼 우리 오빠도 여기로 오는 거네요 했는데 그때 아빠가 나에게 너도 나중에 죽으면 아빠 옆에 와야 된다.  그리고 니 아들도 아빠 옆에 와야 된다. 라고 하셨다.  이민을 가서 이혼을 한 딸이 죽으면 어디로 가서 묻힐까 까지 평소에 걱정을 하셨던 걸까?  아니면 멀리 이민을 간 딸과 손주와 떨어져 살았던 삶이 싫으셨었던 걸까?  정신이 멀쩡 하실때는 한번도 아빠랑 같이 살자고 말씀을 안하시던 분께서 죽으면 아빠 옆으로 오라고 하시는 말씀이 예전에 몰랐던 아빠의 속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 졌다.   우리는 이렇게 아빠의 치매덕에 몰랐던 아빠의 숨은 사랑도 알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아빠와 첫 번째 여행이 이렇게 평온하게 진행이 된 것만은 아니었다.  첫번째 여행이라 당일치기로 영동을 다녀오는 것으로 하고 왕복 기차표를 예매해 두고 평소라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을 했을 텐데 요즘 아빠의 체력이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기가 조금은 버거우신 것 같아서 택시를 불렀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택시를 불렀다고 생각을 했지만 서울의 교통사정은 내 생각보다 더 나빴고 생각했던 것보다 길이 막혀서 빠른 걸음으로 플랫폼을 도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분 차이로 눈 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아빠를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바로 창구로 달려가서 놓친 기차표는 일정 금액을 제하고 환불을 받고 다음 열차를 다시 사려는데 영동으로 가는 기차는 바로 다음 기차가 몇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대전까지 KTX로 가서 대전에서 환승을 해서 가는 차표를 샀다.  그런데 좌석은 없다고 해서 그거라도 괜찮다며 표를 샀다.
치매 아빠와의 여행은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대응해 나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일인것 같다.
 
거동이 불편한 분과 서울역을 택시로 갈 때는 서울역 동부보다는 서부 출구를 이용하는 것이 택시에서 내려서 많이 안 걸어도 바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플랫폼으로 이동하기에 동선이 짧고  더 좋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는 지하철 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니 어느 시간대 이든 상관없이 여유 있게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이용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영동에서 성묘만 하고 바로 다시 역으로 돌아와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사고 서울로 돌아왔다.
 
앞으로 이렇게 기차를 이용해서 여행을 다니면 될 것 같다.
 
2025년 5월 21일 일기